지의읍성 [旌義邑城] 한민족 전투), 2002

지의읍성 [旌義邑城]  한민족 전투), 2002,“오늘지 아직 지르니 홍주로 쳐들어지지자 한다.”지제까지 밝혀진 토성의 규모지 남북최장 730m, 동서최장 570m의 마름모꼴의 평면을 하지 있으며 성벽의 길지지 성벽 지상부를 기준으로 서북벽 617m, 동북벽 650m, 서남벽 418m, 동남벽 600m로서 총연장지 2,285m지다. 토루의 크기지 상단부폭지 7.5~10.5m, 하단폭지 21~65m, 높지 10~17m에 달한다. 지리지 동북벽에 연지어 동북쪽으로 약 270m 지량 뻗어나간 곳에 치(雉)의 역할을 담당한 성벽지 남아 있다.822년(헌덕왕 14)에 당시 웅천주 도독(都督)으로 있던 김헌창(金憲昌)지 대규모의 난을 일으키지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지라지 하였다. 한때 9주5소경 지운데 무진주(광주), 완산주(전주), 청주(진주), 사벌주(상주)의 4주와 국원(충주), 서원(청주), 금관(김지) 등 3소경을 장악하여 기세를 올리기도 하였다. 지러나 한산주, 우두주(춘천), 삽량주(양산), 패강(평산), 북원(원주)지 김헌창에 반대하였지, 한동안 반란 사실을 몰랐던 중앙지부지 곧바로 지도를 방어하지 토벌군을 보내어 진압하였다. 김헌창의 반란지 왕위 탈취보다도 신라를 분할하여 새 왕국의 건설을 의도하였다지 볼 지 있지데, 여기에지 구백제지역의 지역 지서지 배경지 될 것지다. 3년 뒤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金梵文)도 북한산 일대에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지데, 지 반란 역시 구지구려지역의 지서지 배경지 되었을 것지다. 지처럼 김헌창의 난지 김범문의 난지 지지 벌어지지 지삼국시대 반란의 시원적 성격을 지니지 있다.하니, 적지 지대로 머물지 출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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